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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감상해보았다. 개봉된 지 한참 된 영화이고, 영화광들 사이에서 띵작이라는 평도 워낙 많았기에 어느 정도 기대감을 가지고 감상을 시작해보았다.

 

※ 목차

※ 줄거리

※ 감상포인트

※ 감상후기

 

 

줄거리 

 

서울에 살고 있는 서울여자 '해원'이 어릴적 살던 외딴섬인 '무도'에 잠시 휴식차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겪은 사건들로 영화는 전개된다.  무도라는 섬에는 해원의 어릴적 친구인 '복남'이 가정을 꾸리며 살고있다.  복남은 서울에 살고있는 해원에게 여러 통의 편지를 보내지만 해원은 편지를 읽어보지 않는다.  그러다 본인의 일터였던 은행에서 강제로 휴가를 권하게 되자 할 일이 없어진 해원은 무도를 방문한다.  뭍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섬인 무도에는 총 아홉 명의 주민들밖에 살지 않는데, 복남을 제외한 마을 주민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해원을 달갑지 않아 한다.  그 후, 해원은 무도에 머물며 자연과 어우러져 힐링하며 즐거운 날들을 보내게 되지만, 즐거웠던 시간도 아주 잠시 이내 서서히 그 섬의 비밀을 알게 된다.

이미 개봉된 지 오래된 영화라 이 영화를 두고 많은 이미 많은 평론가들이 많은 평론을 내렸지만, 내 나름대로 감상 포인트를 잡아보고자 한다. 

 

감상포인트 

 

 

1)  두 여자의 무기력한 모습들.

 

섬에 갇혀 평생을 남자들의 성 노리개로 전락하며 자신의 권리 역시 보장받지 못하며 살아온 복남과는 다르게 자신의 삶을 선택해서 살아왔던 해원이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앞에서는 방관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다루고 있다. 극 초반 해원은 의도치 않게 살인사건의 목격자가 되어 경찰에 조사를 받는데, 자신에게 해가 될까 봐 아무런 진술도 하지 않고 방관한 채 무도로 떠난다. 그리고 무도에서 복남이 섬의 모든 주민들에게 학대를 받으며 살고 있는 것을 목격했지만 선뜻 나서지 않는다. 그곳의 삶 자체가 지옥이었던 복남이 자신과 자신의 딸 연희를 서울로 데려가 달라 부탁했지만 그것마저도 거절한다. 그리고 추후 연희의 죽음을 먼발치에서 목격했지만, 경찰이 왔을 때 연희의 죽음을 못 봤다고 진술하며 또다시 방관하게 된다. 

 

2) 방관자가 된 해원 

 

그럼 이쯤에서 생각해볼 문제는 그녀가 왜 방관자가 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녀가 서울에서 살인사건의 진술을 하지 않았던 것과 무도에서 연희의 죽음을 못 본 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법의 허술함'때문이다. 

서울에서 살인사건의 목격자 진술을 위해 경찰서에 갔을 때에도, 무도에서 학대받는 복남과 연희의 사건을 진술하지 않았을 때에도 

이미 해원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법이 자신을 지켜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섣불리 나섰다가는 살해된 그 여자처럼 그리고 복남처럼  자신도 똑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해원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서울에서 범죄 가해자들과 목격자인 해원을 시간차를 두지 않고 밖으로 내보낸 것은 경찰이었고, 그로 인해 해원은 가해자들에게 협박을 받게 된다. 무도에 갔을 때도 크게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일단 외딴섬이라 외부와는 완벽히 차단이 되어있고, 섬의 주민들이 똘똘 뭉쳐서 사건을 방관하고 있는터라 입이라도 잘못 놀렸다가는 큰 해를 입게 될 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사실이었다. 실제로 영화 속에서 해원은 복남의 시동생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하지 않았던가.

법이 나를 지켜주지 못하고, 나를 지킬 사람은 나뿐인데 사건을 방관했다는 이유로 방관 죄를 뒤집어 씌워 욕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영화감상 후, 해원을 욕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그녀를 욕하기 전에 사건의 피해자와 목격자를 완벽하게 보호해 주지 못하는 허술한 법을 먼저 욕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딸을 잃고 오열하는 복남. 먼발치에서 사건을 목격하고 있는 해원을 보게된다. 
딸이 죽은 사건을 먼발치에서 목격하고도 방관해 버리는 해원이다. 

 

3) '복남'의 비정상 적인 행동.

 

결혼 후, 복남은 남편의 폭력에서 나름 벗어나고자 노력했지만 번번이 실패하게 되자 학습된 실패로 인해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서도 큰 반항 역시 하지 않고, 그 상황을 나름 합리화 하며 살아간다.  복남의 남편은 버릇처럼 복남을 구타하고, 하루종일 일을 부려먹으면서도 미안해 하지 않는다. 하물며 다방종업원을 불러서 복남이 있는곳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성관계를 하며 복남을 말그대로 노예처럼 대함에도 불구하고 복남은 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간다. 

만약 좋게 넘어가지 않는다면? 예고된 학대가 더 심하게 이루어질게 뻔하기 때문에 그녀는 말도 안되는 상황속에서도 아이 하나만을 바라보며 학대를 견디며 살아간다. 그리고 섬의 주민들도 똑같이 복남을 학대하며 가스 라이팅을 하는데 그녀는 어떤 반항도 하지 않는다. 그래야 그나마 본인이 편하기 때문이다. 이미 복남은 옳고 그런 것의 판단에 무뎌진 상태였지만, 본인의 남편이 딸을 성적으로 건드리게 되자 또 한 번 탈출을 시도하게 되는데 이마저도 실패하고 만다. 

 

 

 

4) 복남과 해원 두 여자가 변화하는 모습들

 

땡볕아래에서 해를 바라보던 복남. 이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다.

 

힘든 생활 속에서 복남은 마지막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탈출에 실패하게 되자 화가 난 남편에게 구타를 당한다. 그 와중에 남편은 구타를 말리던  딸 연희마저 밀치다가 돌에 머리를 부딪혀서 죽게 만든다.  학대 속에서도 복남이 힘들게 삶을 이어왔던 이유는 딸 '연희'때문이었는데 딸이 죽자 복남은 자신의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딸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사람은 복남 한 사람뿐. 동네 주민들도 남편도 시동생도 아무도 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 딸의 죽음을 숨기고 은폐하려 하는 주민들과, 그나마 마지막 남은 구세주였던 해원 역시도 사건을 은폐해 버리자 결국 복남은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놓아버린다. 한 여름 땡볕 밑에서 감자를 열심히 캐고 있던 복남의 주변에서 동네 할머니들은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복남은 이내 그들에게 다가가 낫을 휘두르고 딸의 죽음을 숨기려 했던 동네 할머니들을 차례대로 죽여버린다. 그 후, 자신을 성적으로 학대했던 시동생의 목을 낫으로 베어버리고, 자신을 심하게 학대했던 남편 역시 처참하게 살해해버린다. 광분한 복남의 낫에 피투성이가 되어버린 외딴섬 무도에서 살아남은 사람이라고는 항상 아무 말 없이 풀을 뜯고 있던 할아버지 한분과 해원 그리고 복남뿐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할아버지 역시 복남처럼 성적으로 학대받은 삶을 살았던 할머니들의 성노리개였다. 같은 처지였던 복남이 할아버지만은 죽이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복남은 오랜 세월 학대받은 '학대의 피해자'에서 '살인 가해자'가 되어서야  근 삼십 년 만에 그렇게 탈출하고 싶었지만 탈출할 수 없었던 무도를 탈출하게 된다. 그 후, 가까스로 섬을 탈출한 해원과 그녀를 뒤쫓아 살해하려던 복남은 대립 끝에 해원은 목숨을 건지게 되고, 복남은 목숨을 잃게 된다.

 

사건의 목격진술을 하는 해원. 

 

  복남이 죽고 해원은 서울로 올라와 지난날 자신이 외면했었던 살인사건의 목격자 진술을 하게 되는데, 가해자들에게 위협을 받는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겁먹지 않는다. 이는 복남의 사건을 겪고 난 후의 해원의 심경의 변화를 보여준다. 집에 돌아온 해원은 욕실로 들어가 옷을 입은 채로 물을 뿌리고  그 후에 욕실을 나와 그제야 그동안 읽어보지 않았던 복남의 편지들을 읽어보기 시작한다. 도와줄사람이 너 밖에 없다며, 간곡하게 도움을 요청하던 복남의 외침을 그제서야 듣게 된 해원은 후회를 하게 되고 젖은 몸을 바닥에 눕히며 영화는 끝난다. 만약 해원이 무도에 가기 전 외면하지 않고 복남의 편지를 한 번이라도 읽어보았다면? 아마 복남이 살인을 저지를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무도에서 딸의 죽음을 해원이 방관하지 않았더라면? 역시 복남이 살인을 할 일도, 목숨을 잃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계속된 편지에도 답장을 하지 않았던 해원이 복남을 찾아왔을 때 복남은 지옥 같은 삶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한줄기 희망을 가졌을 텐데 그 희망이 짓밟혀 버리자 살인범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감상후기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방관하는 것도 죄'라는 것을 명확히 일깨워주었지만, 방관하지 않고는 자신을 보호할 수 없는 사회의 현실 역시 바로 보게 만들어준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에서 법 앞에서 가해자는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고,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10년~15년형에 그치는 경우도 많은데, 섣불리 진술했다가 그 후에 보복이라도 당하면 나라는 사람을 누가 보호해 준단 말인가? 

 

만약 내가 영화 속 복남과 해원의 상황에 똑같이 처했더라면, 나는 성폭행 당할뻔한 해원을 복남처럼 구할수 있을까? 아니면 해원처럼 방관자의 입장으로 남아있을것인가? 생각해보면 아마 나역시도 후자인 해원과 같이 행동했을것이 뻔하다. 

 

하지만 다행히 영화속 해원은 무도의 사건으로 인해 많이 변하게 된다.  서울로 돌아와 사건의 목격 진술을 하며 지난날 사건 앞에 방관자로 머물러있었던 본인의 행동을 후회한다. 결국 그 치열했던 사건으로 인해 또 한 명의 방관자가 목격자 진술을 하게 되며 사건의 가해자를 법의 처벌을 받게 했다는 점에서 결말은 좀 나은 모양새를 연출하며 영화는 끝나게 된다.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영화가 이미 오래전에 만들어진 영화였지만 아직까지도 회자되며 관객들에게 호평을 이끄는 이유는 섬에서 노예로 살던 복남의 삶과 똑같은 삶을 사는 이들이 매스컴에 심심치 않게 등장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 중에 시골 마을에서 여 선생을 남자들이 돌려가며 성폭행했던 사건과, 신안군 섬노예 사건 등을 보면 2021년의 현재의 시간 속에서도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런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일들이 나에게 만약 일어난다면? 나는 그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방관하게 될 것인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보며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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