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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빈에 대하여.

보통 사이코패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는 많았지만 싸이코 패스를 가족으로 둔 가족의 입장에서 영화가 나온 적은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영화는 싸이코 패스 아들 '케빈'을 키우고 있던 엄마 에바의 시선으로 영화의 내용이 전개된다. 

 

  • 줄거리 
  • 이 영화를 감상했던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3가지 의문점 

어린 케빈. 

 

  • 줄거리 

1) 원치 않은 아이의 탄생

 

에바는 자유로운 생활을 원하던 여행가였다. 여행하던 도중 여행지에서 남자와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때 원치 않던 아이 바로 케빈이 생겨버렸다. 그 후, 그녀는 그 남자와 결혼을 했고 주부로의 삶을 살게 된다. 자유인으로 자유롭게 살길 바란 그녀이기에 어쩌면 처음부터 결혼하고는 맞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녀에게는 주부로 사는 하루하루가 그저 지겹기만 하다.

게다가 자신의 자유가 박탈당한 것도 힘든데 그 당시 갓난 아이인 케빈을 케어하는 것 자체가 고역 자체였다. 신기하게도 아들 케빈은 갓난아기 시절부터 엄마와 있기만 하면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고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 에바는 아이를 달래는 대신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공사장으로 데려간다. 아이 울음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공사장의 소음을 듣는 것이 에바에게는 더 나은 일이었던 셈이다.

그날부터 갓난아기인 케빈은 울지 않았고, 이날의 사건은 훗날 케빈이 싸이코패스가 되는 것에 어느 정도 일조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실제로 갓난아이 때 아이가 우는 모습을 보고 달래지 않고 방관하고 있으면 훗날 아이의 인격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이 울음 소리를 듣느니 차라리 공사장 소음이 낫다고 생각한 에바. 

 

2) 엄마와 아이의 갈등

 

갓난아기 시절을 지나 5살이 되었을때도 케빈은 항상 엄마에게 버거운 존재였다. 아이는 엄마에게만 마치 반항하기라도 하듯 엄마를 곤란하게 하는 날이 반복되었다. 기저귀를 새로 갈아주면 계속 변을 보기 일쑤였던 어느 날 그날 에바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는지 아이를 바닥에 던져버려서 다치게 만든다. 아이에게는 엄마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만 것이다. 

그 후로 아이는 혼자 대소변을 가렸지만 이미 둘의 사이는 회복되지 못할 만큼 멀어졌다. 

에바는 그날부터 아이에게 죄책감을 가지며 다정히 대해주려 했지만 이미 상황은 늦어버린 셈이었다.

 

 

3) 싸이코 패스가 된 케빈

 

그리고 시간이 지나 청소년이 된 케빈은 이미 에바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에바는 케빈이 항상 불안했기에 아이 아빠인 프랭클린에게 고민을 토로했지만 프랭클린은 별로 대수롭지 않아 한다. 아빠는 크게 아이에게 관심이 없고 항상 방관하는 태도로 일관한다. 그러던 와중 케빈은 이제 자신의 동생인 딸까지 아무 죄책감 없이 다치게 만들고 괴롭히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선물 받은 화살로 케빈은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사고를 치고 만다.

학교로 가서 강당에 있는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활을 쏘아 아이들을 죽게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 사실을 안 엄마는 절망하며 집으로 돌아와 상담할 남편을 찾지만 남편과 딸도 이미 케빈에게 활을 맞고 죽어 있었다. 

묻지 마 살인을 저지른 후, 케빈은 감옥에 갇히고 케빈의 엄마 역시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가게 된다.

아들의 범죄로 인해 동네에서 피해자들의 유가족을 만날 때마다 괜스레 얻어맞고 멸시받으며 고단한 삶을 겨우겨우 살아가게 된다. 

 

 

  • 이 영화를 감상했던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3가지 의문점 

 

이쯤에서 이 영화를 관람한 관객들이 가장 크게 궁금해하던  의문점 세 가지를 짚어보기로 한다.

 

①  케빈은 왜 싸이코패스가 되었나?

②  케빈이 제일 미워했던 사람은 엄마인데 왜 엄마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들만 죽인 것일까?

③  감독은 영화 속 에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케빈이 싸이코 패스가 된 이유는?

 

엄마 아빠의 잘못된 양육 태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일까?

케빈이 성장하는 내내  아빠는 시종일관 아이를 방관하고 있는 방관자의 태도를 취했으며, 엄마는 케빈에게는 모성애를 느끼지 못했는지 갓난아기 시절 우는 케빈을 달래지 않고 공사장으로 데려가는 등의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그리고 아이가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무렵에는 아이에게 대놓고 악담을 퍼붓기도 한다. 생각해보면 자신을 제일 사랑해줘야 하는 부모에게서 저런 멸시를 받는다면 아이가 정서적으로 치명타를 입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부모의 양육태도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케빈은 이상하리만큼 엇나갔으며 그 때문에 사이코패스가 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양육태도 + 선천적으로 타고난 본성이 케빈을 살인자로 만든 것은 아니었나 생각한다.

 

 

케빈은 왜 엄마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죽인 것일까?

 

아마 케빈이 젤 미워했던 사람은 엄마였기 때문에 엄마를 본인의 '살인 쇼'의 관객으로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살인을 하면 봐줄 관객이 필요했을 텐데 그 관객으로 엄마를 낙점했기 때문에 살려준 것이라고 해석해보고 싶다. 케빈의 범죄 덕분에 엄마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 날들을 살아가게 되었다. 결국 케빈이 젤 미워했던 것은 엄마이고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아빠와 딸)을 죽임으로써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날들을 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감독은 영화 속 에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한 것일까?

 

영화는 엄마인 에바의 시선으로만 전개된다. 자유로운 여행가로 살던 엄마의 원하지 않던 임신과 그 임신으로 모든 게 바뀌어버린 현실 앞에 좌절했던 엄마. 그리고 그에 대한 분노는 고스란히 아이에게 향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다른 엄마들처럼 아이에게 모성애를 갖지 못하는 에바를 비난했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그건 꼭 비난받을 일만은 아니다.  어쩌면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없던 모성애가 갑자기 생기기를 바라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시종일관 아이를 방관하는 아빠 때문에 원치 않던 아이의 탄생으로 인한 짐은 고스란히 엄마인 에바의 몫이었다. 아무리 다른 엄마들처럼 모성애가 없다 한들 아이를 싸이코 패스로 만들고 싶은 엄마는 세상에 없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기에 난감하고 서툰 것은 당연한 것인데 아이가 잘못되자 그것이 꼭 부족한 모성애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감독은 갑자기 엄마가 된 에바를 통해 엄마가 되었다고 자동으로 모성애를 가지게 되는 것만은 아니며, 모성애를 지니지 못했다고 해서 여성에게만 더 가혹하게 가해지는 사회적 비난과 그에 대한 시선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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